• 蓋單山領
東西分水界 중에서 고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부분은 개마대산에서 철령까지다. 그 중 蓋馬大山에서 황초령까지는 압록강 유역의 동변인데 고구려와 옥저의 경계였다. 황초령에서 철령까지는 대동강과 임진강 유역의 동변을 이은 것인데 조선과 예의 경계였으며 單單大領이라 불리었다.
http://qindex.info/i.php?x=2352
• 0245+ 三國志(289) 동이 설명 시점
공손연까지 3대가 계속 요동을 차지하자 천자는 그 지역을 포기하고 해외를 맡겼다. 그 결과 동이와의 관계가 끊어져 중국과 통하지 않게 되었다. 경초 연간에 크게 군대를 일으켜 연을 죽이고 또 몰래 바다를 건너가 낙랑군과 대방군을 되찾았다. 그러자 해외가 안정되어 동이들이 굴복하였다.
그 뒤 고구려가 배반하므로 다시 약간의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하면서 매우 먼 지방까지 쫓으니 오환과 골도를 넘고 옥저를 거쳐 숙신의 왕정을 짓밟고 동으로 큰 바다에 이르렀다.
http://qindex.info/i.php?x=8474
• 三國志(289)
扶餘의 북쪽에는 弱水가 있고 서쪽에는 鮮卑가 있으며 동쪽에는 挹婁가 있고 남쪽에는 高句麗가 있다. 高句麗의 북쪽에는 扶餘가 있고 동쪽에는 沃沮가 있으며 남쪽에는 朝鮮과 濊가 있다. 朝鮮의 동쪽이 다 濊다. 沃沮의 북쪽에는 扶餘와 挹婁가 있고 서쪽에는 高句麗가 있으며 남쪽에는 濊가 있다.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고 남쪽에는 辰韓이 있다.
http://qindex.info/i.php?x=23502
• 三國志(289) 요약 1
扶餘의 북쪽에는 弱水가 있고 서쪽에는 鮮卑가 있으며 동쪽에는 挹婁가 있고 남쪽에는 高句麗가 있다. 高句麗의 북쪽에는 扶餘가 있고 동쪽에는 沃沮가 있으며 남쪽에는 朝鮮과 濊가 있다. 朝鮮의 동쪽이 다 濊다. 沃沮의 북쪽에는 扶餘와 挹婁가 있고 서쪽에는 高句麗가 있으며 남쪽에는 濊가 있다.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고 남쪽에는 辰韓이 있다.
http://qindex.info/i.php?x=7341
• -0108 茂陵書
임둔군의 치소 동이현이 영흥만에 있었고 진번군의 치소 삽현이 한강 하류에 있었다면 무릉서의 이야기처럼 장안에서의 거리가 1500리 차이날 수 있다. 단, 동이에 이르는 경로가 낙랑을 거쳐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안을 거쳐 황초령을 넘어가는 경로일 경우다.
임둔군을 설치할 때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갔지만 한나라와 교통할 때는 황초령을 넘어 집안을 거쳐갔다고 추정할 수 있다.
http://qindex.info/i.php?x=19055
• -0108 臨屯郡
임둔군은 과거 창해군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볼 수 있다. 현도군은 이 임둔군보다 한 해 늦게 설치되었는데, 이는 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의 영향력이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올라갔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집안을 거쳐 황초령을 넘어갔다면 집안에 군을 먼저 설치하였을 것이다.
한나라는 예에 임둔군을 설치하고 이듬해에 마운령을 넘어 옥저에 현도군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요동군과 옥저 사이의 맥은 이 현도군에 소속시켰다.
http://qindex.info/i.php?x=17062
• 0245± @동이 @東夷
扶餘의 북쪽에는 弱水가 있고 서쪽에는 鮮卑가 있으며 동쪽에는 挹婁가 있고 남쪽에는 高句麗가 있다. 高句麗의 북쪽에는 扶餘가 있고 동쪽에는 沃沮가 있으며 남쪽에는 朝鮮과 濊가 있다. 朝鮮의 동쪽이 다 濊다. 沃沮의 북쪽에는 扶餘와 挹婁가 있고 서쪽에는 高句麗가 있으며 남쪽에는 濊가 있다.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고 남쪽에는 辰韓이 있다.
http://qindex.info/i.php?x=7304
• 0289 三國志 요약
○ 韓在帶方之南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 馬韓在西 마한은 서쪽에 있다.
○ 辰韓在馬韓之東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 濊南與辰韓 예는 남쪽으로 진한에 접해 있다.
○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₁ 대방군에서 왜까지는 해안을 따라 물길로 가서 한국₁을 거쳐간다.
▐ 염사착 이야기와 기리영 사건에 나오는 진한은 삼국지의 진한에 대한 설명과 맞지 않고 마한과 어울린다.
http://qindex.info/i.php?x=9945
• 0289 三國志 요약 1
扶餘의 북쪽에는 弱水가 있고 서쪽에는 鮮卑가 있으며 동쪽에는 挹婁가 있고 남쪽에는 高句麗가 있다. 高句麗의 북쪽에는 扶餘가 있고 동쪽에는 沃沮가 있으며 남쪽에는 朝鮮과 濊가 있다. 朝鮮의 동쪽이 다 濊다. 沃沮의 북쪽에는 扶餘와 挹婁가 있고 서쪽에는 高句麗가 있으며 남쪽에는 濊가 있다.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고 남쪽에는 辰韓이 있다.
http://qindex.info/i.php?x=19155
• 0300- 무릉서(茂陵書)
▐ 임둔군의 치소 동이현이 영흥만에 있었고 진번군의 치소 삽현이 한강 하류에 있었다면 무릉서의 이야기처럼 장안에서의 거리가 1500리 차이날 수 있다. 단, 동이에 이르는 경로가 낙랑을 거쳐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안을 거쳐 황초령을 넘어가는 경로일 경우다.
임둔군을 설치할 때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갔지만 한나라와 교통할 때는 황초령을 넘어 집안을 거쳐갔다고 추정할 수 있다.
http://qindex.info/i.php?x=16436
• 帶方郡
진번군은 이내 폐지되고 낙랑군에 합쳐졌는데, 이후 진번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한편, 전한의 낙랑 25현은 영동 7현이 갈라져 나가 후한의 낙랑 18성이 되었고 이 중에서 7성이 갈라져 나와 서진의 대방 7현이 되었다. 이 대방 7현이 진번이 폐지될 때 낙랑으로 합쳐진 진번의 7현으로 추정된다. 대방 7현은 자비령에서 임진강 사이로 추정되므로 낙랑에 합쳐지지 않은 진번 8현도 임진강 남쪽에 그만한 크기의 지역이 되어야 한다. 차현까지가 유력하다.
http://qindex.info/i.php?x=6530
• 眞番
진번은 사기(-91)에서 주로 조선과 묶여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에 접한 나라로 보인다. 조선은 사기에서 연나라의 동쪽에 접해 있다고 되어 있고 삼국지(289)에는 고구려의 남쪽이자 예의 서쪽에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조선에 접한 진번이 있을 곳은 조선의 남쪽 밖에 없다. 사기에는 진번이 맥과 동시에 거론되고 있어 맥인의 나라 고구려가 진번의 후신일 가능성도 배제된다.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이곳에 진번군을 설치하였다.
http://qindex.info/i.php?x=19065
• 韓八國
삼국지(289)에는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진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8국은 대방에 접한 지역으로 묘사되는데, 삼한에 대한 삼국지의 설명에 의하면 그런 지역은 진한이 아니라 마한이다. 한편, 진번군 15개 현 가운데 7현은 낙랑군에 합쳐졌다 나중에 대방군으로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데 나머지 8개 현의 향방은 알 수 없다. 이 진번 8현이 훗날 위나라가 낙랑에 넣으려한 진한 8국이 아닐까?
http://qindex.info/i.php?x=5860
• 동이와 불이
예는 원래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하였는데 위만 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황초령을 넘어 압록강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였고 이때 잠시 예에 창해군이 설치되기도 했다.
한나라가 위만 조선을 멸망시키고 옛 창해군 지역에 임둔군을 설치할 때 이 길을 고려하여 치소를 황초령 아래에 두었다.
그러나 압록강을 지나는 길이 맥에 의해 막히자 다시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가는 길을 택했고 동부도위의 치소도 영흥만 남쪽에 두었다.
http://qindex.info/i.php?x=13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