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888 眞鑑禪師碑銘
禪師法諱慧昭俗姓崔氏其先漢族冠盖山東隋師征遼多沒驪貊有降志而爲遐甿者爰及聖唐囊括四郡今爲全州金馬人也
선사의 법휘는 혜소이며 속성은 최씨다. 그 선조는 한족으로 산동의 고관이었다. 수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요동을 정벌하다가 려맥에서 많이 죽자 항복하여 변방의 백성이 되려는 자가 있었는데 성스러운 당나라가 4군을 차지함에 이르러 지금 전주의 금마사람이 되었다.
▐ 고려를 驪貊이라 칭하고 당나라가 고려를 멸망시킨 것을 四郡을 차지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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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5 ◾雞林
閼智→勢漢→阿道→首留→郁甫→仇道→末仇→奈勿→巴胡→習寶→智證→立宗→眞興→眞智→龍樹→武烈→文武┆閼智부터 味鄒까지 7대인데, 7대는 3천궁녀나 100만대군처럼 한 집안의 유래가 오래된 것을 표현하는 상투적인 어구다.
이것은 閼智 설화가 味鄒 시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훗날 김씨를 칭하게 되는 가문에서 처음 왕이 된 味鄒는 자신의 혈통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일은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호를 雞林으로 바꾼 것도 味鄒 시기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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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0 日本書紀 0562
新羅 長戟强弩 凌蹙任那 鉅牙鉤爪 殘虐含靈 刳肝斮趾 不厭其快 曝骨焚屍 不謂其酷 任那族姓 百姓以還 窮刀極俎 旣屠且膾 신라는 긴 창과 강한 활로 임나를 능욕했고 커다란 이빨과 갈고리 같은 손톱으로 중생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간을 꺼내고 발목을 자르고도 만족하지 않았고 뼈가 드러나게 하고 주검을 불태우고도 잔혹하게 여기지 않았다. 임나의 귀족과 백성들은 칼과 도마가 닳도록 도륙당하고 회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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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5 ◾閼智
그러나 閼川 양산촌에서 사로국 시조가 알에서 나왔다고 하고 智는 신라인의 인명에 붙는 접미사이므로 閼智는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 듯하다.
朴居西干(밝은 임금)의 이름도 알지였는데 훗날 신라김씨가 자신들의 시조도 알지라 주장하고 김씨 성을 쓰면서 자신들의 알지는 알이 아닌 금궤에서 나온 것으로 고치고 사로국 시조 알지는 朴居西干을 이름으로 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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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64 新羅 구원
웅략 천황이 즉위한 이후 8년째 신라는 倭를 섬기지 않고 고려와 우호를 맺어 고려의 날랜 병사 100명이 신라를 지켜 주었다.
그러나 고려가 신라를 삼키려 한다는 오해를 한 신라왕이 고려군을 죽이게 하였고 고려는 군사를 일으켜 신라로 쳐들어갔다.
사방에서 고려군의 노랫소리가 들리자 신라는 임나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日本府 行軍元帥로 하여금 구원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임나왕이 선신반구, 길비신소리, 난파길사적목자에게 권하여 신라를 구해주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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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0 日本書紀 0369
고사산에 올라 함께 반석 위에 앉아 백제왕이 맹세하였다. “若敷草爲坐 恐見火燒 且取木爲坐 恐爲水流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들면 불에 탈까 두렵고 나무로 만들면 물에 떠내려갈까 걱정됩니다. 故居磐石而盟者 示長遠之不朽者也 반석에 앉아 맹세하는 것은 오래도록 변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是以 自今以後 千秋萬歲 無絶無窮 常稱西蕃 春秋朝貢 그러므로 지금 이후로는 천 년 만 년 영원토록 늘 서쪽 번국이라 칭하며 봄 가을로 조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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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0 日本書紀 0463
전협은 궁중에서 시종하고 있었는데 큰 소리로 친구들에게 치원에 대하여 말하기를,
"天下麗人 莫若吾婦 茂矣綽矣 諸子備矣 曄矣溫矣 種相足矣 鉛花弗御 蘭澤無加 천하의 미인들 중에서 내 아내만한 이가 없다. 빼어나게 아름다워 온갖 좋은 점을 갖추었고 환히 빛나고 온화하여 여러 가지 좋은 용모를 구비하였다. 화장도 필요 없으며 향수를 바를 것까지도 없다." 天皇 傾耳遙聽 而心悅焉 천황이 귀를 기울여 멀리서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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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0 日本書紀 0463
於是 弟君銜命 率衆 行到百濟 而入其國 國神化爲老女 忽然逢路 弟君就訪國之遠近 老女報言 復行一日 而後可到 弟君自思路遠 不伐而還
이에 제군은 명을 받들어 무리를 이끌고 백제에 도착하였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데 나라의 신이 늙은 여자로 변하여 홀연히 길에서 맞이하였다. 제군이 나라의 멀고 가까움을 묻자 늙은 여자가
"다시 하루를 더 간 다음에야 다다를 수 있다."
라고 대답하였다.
제군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길이 멀다고 여겨 정벌하지 않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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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0 日本書紀 0463
임나국사 전협신은 몰래 백제에 사람을 보내 제군에게 경계하여 "汝之領項 有何罕錮而伐人乎 너의 목이 얼마나 단단하기에 남을 치는가. 전하는 말을 듣건대 천황이 나의 아내와 사통하여 자식까지 있다고 한다. 今恐 禍及於身 可蹻足待 지금 두렵고 화가 내게 미치려 하는데 발돋움하고 기다릴 수야 있겠느냐. 내 아들인 너는 백제를 차지하고 앉아 일본에 통하지 않도록 하라. 나는 임나를 차지하고서 역시 일본에 통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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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9 ❰❰ 0253 「솔까역사」 于老
우로가 말하기를, “지금의 근심거리는 내가 말을 삼가지 않았기 때문이니, 내가 마땅히 그 책임을 지겠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왜군에게 가서 말하기를, “전날의 말은 장난이었을 뿐이다. 어찌 군대를 일으켜 오리라 생각하였겠는가?”라고 하였다. 왜인이 대답하지 않고, 그를 잡아 장작을 쌓은 위에 두고는, 그를 태워 죽이고 돌아갔다. 석우로의 아들은 어려서 걷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안아서 말을 타고 돌아왔다. 나중에 흘해이사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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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11.04 朝鮮王朝實録
조령을 내리기를 “요즘 안팎의 정세가 어수선하여 국운의 흥망에 대하여 예견할 수 없고 짐의 나라 형편이 외로우며 허약하여 일본의 보호에 의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 존립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생각건대, 그와 같은 고약한 도당이 세계 형세에 어두워서 이따금 일본의 두터운 우의를 무시하려고 하다가 마침내는 전에 없던 변괴를 빚어냈으니 이는 바로 짐의 국가와 사직을 해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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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세기 거제 농소리
주구(周溝)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봉분 주변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졌던 것으로 보이는 대호의 구연과 원통형토기 등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사다리꼴의 석실 평면 형태, 나팔상의 짧은 연도와 묘도, 후벽에 사용된 요석(腰石), 문주석(門柱石), 문지방석, 문비석으로 이루어진 현문부의 구조 등은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영산강 유역의 고분에서 나타나는 양상과 유사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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