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0 高麗史(1451) 하공진이 일찍이 동여진을 공격하다 패배하자 유종은 그것을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여진족 95인이 내조하여 화주관에 도착하자 유종이 모두 죽였다. 여진족이 거란에 참소하자 거란주가 군신에게 말하기를, “고려의 강조가 임금을 시해한 것은 대역죄이므로 군사를 내어 죄를 묻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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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9 ❰❰¹⁶ -0662.02.20 「솔까역사」 日本書紀 반여 땅의 옛 이름은 편거 또는 편립이라고 한다. 천황의 군대가 적을 격파하고 대군이 모여 그 땅에 가득하였다. 그래서 이름을 반여라고 고쳐 불렀다. 혹은 말하기를 “천황이 옛날에 엄옹의 양식을 드시고 군대를 내어 서정하였다. 이때 기성의 팔십효수가 그곳에 모여 있었다. 천황의 군사와 크게 싸워 드디어 멸망하였다. 그래서 이름지어 반여읍이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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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9 ❰❰¹⁶ -0662.03.07 「솔까역사」 日本書紀 무릇 대인은 제도를 세우는 존재로 그 도리는 반드시 시세에 적합한 것이다. 만약 백성에게 이익이 된다면 성인이 행하는 일에 무슨 방해가 있겠는가? 마땅히 산림을 개척하고 궁전을 조영하여 삼가 보위에 올라 백성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위로는 건령이 나라를 주신 덕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황손이 바른 길을 닦은 마음을 넓히고자 한다. 그 후 육합을 통일하여 도읍을 열고 팔굉을 덮어서 우리 집으로 삼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兼六合以開都 掩八紘而爲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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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9 ❰❰¹⁶ -0662.03.07 「솔까역사」 日本書紀 三月辛酉朔丁卯 천황이 영을 내려 “내가 동쪽을 정토한 지 이제 6년이 되었다. 천신의 위광 덕분에 흉도를 멸하였다. 그러나 변방의 땅은 아직 평정되지 않아서 요상한 무리가 아직 버티고 있지만, 중주 땅에서는 다시는 풍진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도 평온하다. 그러니 황도를 넓히고 대장 괘를 본떠 대궐을 만들자. 그런데 지금 세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민심도 소박하다. 나무 위에서 살고 굴 안에 살면서 미개한 습속은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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